<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완독했다. 책의 내용이 어렵지 않고 술술 읽혔기에 며칠 걸리지 않고 완독할 수 있었다. 이 도서는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 김승섭님이 쓰신 책이다. 사회역학이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나는 평소에 질병의 원인에도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았을 뿐더러, 질병의 근본 원인(그 질병을 걸리게 만드는 과학적인 근거가 되는 것)을 사회적 원인에서 찾지 않았었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했던 분야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경험하게 해주었던 도서이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의료발전 만으로는 충분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 문제들을 여러가지 접했다. 예를 들어, 실업과 재취업 정책에 돈을 투자하지 않아 해고로 고통받아 자살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나라 문제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복지 예산을 축소하여 치료가 어렵지 않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는 사회와 같은 문제 말이다.
나는 관점에 대한 시각을 기를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시각적인 문제와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 책임의 문제를 어디까지라고 생각할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할까? 그렇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 처하게 되고, 더 아플 확률이 크다. 이것은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 김승섭 작가님은 말한다." 사회의 문제가 던진 질문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온전한 답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 부족함까지도 나누며 함께 답을 찾아가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작가님의 소망처럼 나는 평소에 관심가지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서 알게되었고, 그 문제에대한 사회적 해결책에 대해 고민해볼 기회를 얻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동성애가 AIDS 주범이라는 비과학적 낙인'에 대한 내용이다. 나의 내면속에 있는 나의 굳어진 생각을 유연한 사고로 바꾸도록 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를 동성애자 만의 질병으로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고도 불리는 에이즈가 의학적으로 발견된 첫 환자는 1981년 미국의 동성애자였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몇 개의 병원에서 5명의 남성 동성애자가 정상인 일반인들은 쉽게 걸리지 않는 폐포자충 폐렴에 걸린 사실이 확인 되었다. 당시에는 존재를 몰랐지만,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흔한 감염병이라는 뜻으로 동성애 질환으로 불렸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중앙 아프리카 국가(케냐를 비롯한)에서 성매매 여성을 중심으로 HIV 감염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들로 사람들은 자연히 이 감염 사례를 동성애 질환으로 바라보게 되었던 시각을 의학적으로 근거 잃게 만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생겨난 동성애자에 대한 비과학적인 낙인은 이후에 치료법의 개발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처럼 에이즈 감염은 치료약의 개발로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이고, 그 원인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 질환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성애자와 관련된 에이즈 사회 낙인이 만연하다. 특히나 이성애자에 비해 동성애자의 유병률이 높음을 근거로 동성애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에이즈 질병을 관리하고 예방하는 차원에서 매우 비과학적인 발언이라는 것을 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사례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낙인과 차별로 만들어지는 질병을 권하는 사회라고 느껴졌다. 내가 믿어왔고, 생각해왔던 틀을 전환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한 사회에서 특정 질병의 발생을 줄이고이로 인한 사망을 줄이려면 그 질병의 위험 요인을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개입해야한다. 그러나 위험 요인 중에서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대장암이라는 질병의 위험 요인인 나이를 생각해보자. 대장암을 발병률을 낮추기 위해서 나이를 바꿀 수 있는가? 없다. 말도 안된다. 우리 사회에서의 에이즈 예방 관리 정책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한다. 동성애자라는 성적 지향성은 흡연 처럼 개입하여 바꿀 수 있는 위험 요인이 아니라 사회 인구학적인 인자이다. 그렇기에 한국 남성의 에이즈 발병률이 높다면,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비과학적 낙인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동성애자의 에이즈 유병률을 줄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하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효과적 전략을 수립해야한다. 이것은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기에 치료 받을 필요가 없으며 동성애자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야한다는 의학적이고 법적인 상식을 바탕으로 한다.
질병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국가, 학교, 직장, 지역사회 같은 공동체 특성에서 찾는 관점으로 바라볼 때, 원인의 원인을 생각하게 된다. 일터의 안전성과 노동자의 금연율에대한 연구 부분을 보며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만약 금연에 실패했다고 했을 때, 이 원인을 우리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으면 그 문제가 비단 개인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관점이 바뀐다. 금연의 의지를 좌절시키는 위험한 작업환경에도 문제가 있고, 이를 보다 나은 환경으로 개선하지 못 한 정부와 사회에도 책임이 분명 있다. 둘 다 중요한 원인이다. 개인의 역할과 작업장과 국가의 책임 둘 다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 사례를 읽으며 우리 사회가 개인의 역할만을 이야기 하고 있음을 느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사회에서 개인에게 책임을 더욱 강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사이, 사회는 병들어가고 있다. 나는 앞으로의 사회가 두려웠다. 개인주의는 더욱 극심하게 도래할 것이고 자본주의 아래 사람들은 집단주의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줄어들 거라 느꼈기 때문이다. 분명 이는 심각한 사회 문제이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나 역시 대학생으로서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하는데 바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의 '미래'는 오로지 나라는 개체 하나만의 미래를 의미했다. 나의 비전, 나의 꿈, 나의 계획, 내가 하고 싶은 것 말이다. 이 모든 것의 바탕과 배경에는 사회가 있다. 나는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시사했다. 배운 것이 많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회적 책임과 문제점 그리고 해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시간이 난다면, 다시 읽고 생각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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